one-21guns.
022 본문
오리지널 사니와 언급됩니다.
검x남사니 주의
도검난무 팬픽
캐해석 주의
“가을이구나. 우아한걸.”
벼루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단풍잎을 보자마자 카센 카네사다는 붓질을 멈추고선 잠시 고개를 들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혼마루 안은 노란색 은행잎과 붉은 색 단풍잎이 서로 어우러져 가을이 다가왔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저 멀리 나무 아래서 단풍을 맞으며 빗자루를 들고 열심히 낙엽들을 쓸어담는 시시오와 사니와를 보자마자 카센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시시오는 사니와를 마치 엄마닭 쫒아다니는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사니와가 평상시 업무 볼때는 물론이고 잘때도 딱 붙어잔다. 행여나 다른 남사가 달라붙기라도 하면 불만스런 눈으로 흘겨본다. 시시오의 눈물 나는 견제에도 불구하고 사니와의 한결같은 행동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그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어진다.
마당의 낙엽을 포대자루에 열심히 담은 후 옮기려고 애를 쓰는 사니와의 손을 시시오는 꼭 잡았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 자신을 바라보는 사니와의 시선에 자연스럽게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시시오는 이제 혼자 할 수 있다며 힘차게 웃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혼자 할 수 있어!”
“어. 정말 괜찮겠어?”
“응! 괜찮아! 혼자서도 충분해! 이 시시오님에게 맡겨만 달라고!”
“시시오는 정말 힘세고 씩씩하구나...”
아무 생각없이 말한 사니와의 순수한 칭찬은 강속구가 되어 시시오의 심장을 꿰뚫어버렸다. 터질것처럼 쿵쾅거리는 심장을 한손으로 부여잡은 시시오는 빨개진 얼굴로 금방 다녀올테니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낙엽이 든 포대자루를 어깨에 짊어진 다음 후다닥 도망가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누가 사니와를 채갈까봐 화사한 금발을 휘날리며 재빨리 발을 놀리는 시시오의 모습은 마치 야밤을 틈타 도망가는 도둑의 모습과도 같았다.
낙엽을 쏟아놓기 위해 뒤뜰로 이어지는 모퉁이를 돌자마자 익숙한 하얀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시오와 얼굴이 마주치자마자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짖궂게 웃으며 어디로 가냐면서 장난스럽게 시시오가 매고 있는 포대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이렇게 열심히 청소를 할 줄이야. 보기 좋은걸?”
“너 좋으라고 청소한거 아니거든?! 얼른 비켜. 빨리 쏟아놓고 주인에게 가야해.”
“놀랍군! 주인이 혼자 있다는 말이지?”
“너..또 무슨 짓을 하려는거야?”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는 시시오에게 츠루마루는 가서 아침인사라도 하겠다며 장난스럽게 황금빛 눈을 휘어보였다. 시시오 몰래 포대 아래쪽에 구멍을 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진 낙엽들을 보자마자 시시오는 화들짝 놀라기 시작했다. 포대를 살펴보니 어느새 없던 구멍이 하나 커다랗게 뚫려있었다. 이거 너가 한 짓이지! 유력한 용의자인 츠루마루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빽 소리를 지르자 츠루마루는 억울한 듯이 미소를 띄고 결백을 증명한다는 듯이 두 손을 들어 보인다.
“츠루마루! 너가 한짓이지!”
“아니.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러지? 애초에 구멍뚫린 자루에 담은 네 잘못 아닌가?”
“웃기지마! 주인과 담을 때 까지만 해도 구멍 같은건 없었어!”
“이런 이런. 바닥이 더러워졌군. 어서 치우지 않으면 큰일이겠는걸?”
바짝 약이 오른 시시오를 뒤로 하고 츠루마루가 사니와가 있는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시시오는 다급한 마음에 낙엽 위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츠루마루가 헤실헤실 웃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시시오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또 장난을 치셨군요. 이치고 히토후리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츠루마루는 웃는 모습 그대로 굳어버렸고 다급하던 시시오의 얼굴은 활짝 피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미소를 띈 채 다가온 이치고 히토후리는 츠루마루의 뒤에 서서 그가 도망칠 곳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여어. 이치고 히토후리. 좋은 아침이군.”
“네. 좋은 아침입니다. 그 좋은 아침에 왜 멀쩡한 시시오님을 방해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니. 내가 방해한게 아니라니까.”
“저 멀리서 구멍을 뚫는 걸 봤습니다만..”
“역시! 너가 한 짓이였어!”
방방 뛰는 시시오를 진정시킨 이치고 히토후리는 난감한 얼굴로 서 있는 츠루마루 쿠니나가에게 빗자루를 쥐어 준 후 어서 쓸라는 듯이 땅에 떨어진 낙엽을 손가락으로 가르키기 시작했다. 울상을 지은 채 열심히 빗자루 질을 하는 츠루마루를 만족스럽게 본 이치고 히토후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시시오에게 어서 가 보라고 말해주었다.
“여기서부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서 주군에게 가보시지요.”
“고, 고마워! 이치고 히토후리!”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치고 히토후리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나중에 상점에 들려서 이치고의 동생들에게 돌릴 과자를 사와야겠다고 다짐하며 시시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니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시시오의 눈에 보인 건 그 새를 못참고 단풍나무에 기댄 채 쿨쿨 낮잠을 자고 있는 사니와의 모습이었다.
사니와가 입은 갈색 사무에 위로 단풍 몇 개가 우아하게 떨어져 있었고 햇살과 같은 머리카락 위에는 노란색 단풍이 내려앉아 있었다. 낙엽이 자신의 몸을 뒤덮는 줄도 모른 채 곤히 낮잠을 즐기는 사니와의 모습을 본 시시오는 웃음을 터트리며 사니와에게로 다가갔다. 어쩔수 없다면서 웃는 시시오는 사니와 옆에 앉아 몸에 쌓인 낙엽을 천천히 털어주기 시작했다. 답답함에 속이 터질때도 있지만 가끔씩 보여주는 이런 귀여운 모습을 보면 그동안에 느꼈던 야속한 감정이 다 달아난다.
어쩔 수 없다니까 우리 주인은. 시시오는 씩씩하게 한번 웃고선 조심스레 사니와를 안아 올렸다. 몸을 안아 올리자마자 낙엽이 후두둑 떨어진다. 아무도 몰래 사니와의 뺨에 입을 쪽 맞춰준 시시오는 후끈거리는 뺨을 애써 무시한 채 사니와를 안고 그의 방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