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21guns.
02 본문
오리지널 사니와 언급됩니다.
검x남사니 주의
도검난무 팬픽
캐해석 붕괴 주의
약간의 유혈 묘사 주의.
‘고통은 나약함이 빠져나가는 증거다.’ 훈련소에 있을 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말이다. 그 말만을 믿고 가슴속에 깊이 새겼다. 그리고 곧 전장에 발을 딛자마자 난 깨달았다. 나약함 말고도 다른 것이 빠져 나간다는걸. 사람으로서 있기 위한, 사람으로서 필요한 그 무언가가.
아직 깨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새벽이지만, 툇마루에는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신 채 아무말없이 담배연기만 뿜어내고 있다. 멍하니 담배를 태우는 사니와를 보고 야겐 토시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점 없는 검은 색 눈에는 원인 모를 불안감과 슬픔, 그리고 공포가 서려있었다. 혹시 악몽이라도 꾼 건가? 야겐 토시로는 조용히 사니와의 옆에 앉아 진정하라는 듯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을 얹자마자 그의 고개가 홱 하고 야겐 쪽으로 돌아간다. 초점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검은 눈은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 같이 공허했다.
“대장 뭐하는 거야? 깨어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라고.”
말을 뱉자마자 야겐 토시로는 자신의 머리를 짚었다. 자신의 대장은 아직 우리말을 할 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야겐 토시로는 말 대신 몸짓을 택했다. 야겐 토시로는 사니와의 앞에서 열심히 손과 발을 동원해서 왜 깨어났냐고 물어보았지만 돌아온 건 말없이 빤히 쳐다보는 사니와의 시선이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좀 창피하다. 사니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을 튕겨 피던 담배꽁초를 털어버린 다음, 조용히 뒤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바깥에는 야겐만이 덩그러니 남아 걱정을 가득 담은 눈으로 사니와가 들어간 방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코에 이물질이 들어오는 느낌에 사니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눈을 뜨니 곰팡이 슬은 누런 천장이 아닌 잘 관리된 나무 천장이 보인다. 여기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어느새 코에 들어왔던 이물질은 콧구멍을 벗어나 콧잔등을 살살 간지럽힌다. 벌레가 들어왔나? 짜증이 난 사니와는 이물질의 정체를 확인하고자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언제 들어온건지 자신의 옆에 앉아 강아지풀을 들고 자신의 코를 간질거리는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있었다. 츠루마루는 사니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갑다는 듯이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입가에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여어 좋은 아침이군! 간밤에 잠은 잘 잤나?”
“.....”
“아차! 넌 우리말을 아직 할 줄 몰랐지.”
“......”
“..아침에 그렇게 깨운건 미안한데 그렇게 경멸을 가득 담은 눈으로 쏘아보지는 말아주겠나?”
사니와는 아침부터 기분이 나쁜지 차갑게 식은 눈으로 츠루마루 쿠니나가를 쏘아보고 있었다. 사과를 하려고 해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소용없다. 츠루마루는 잠시 고민하더니 씨익 웃으며 자신을 쏘아보는 사니와의 등을 기분 풀라는 듯이 손바닥으로 팡팡 치기 시작했다. 사니와의 눈이 점점 차가워지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츠루마루는 사니와의 팔을 잡고 부엌으로 질질 끌고 갔다.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밥을 짓던 카센 카네사다와 야겐 토시로는 고개를 돌려 누가 들어왔나 보았다. 그곳엔 기분 좋은 듯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는 츠루마루 쿠니나가와 그에게 팔을 붙들린 채 매서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는 사니와가 있었다. 아침부터 조용할 날이 없구나. 카센 카네사다는 우아하지 못한 둘의 행태에 한숨을 쉬며 다가가 사니와의 팔을 잡고 있는 츠루마루 쿠니나가의 손을 뿌리치고 사니와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카센 카네사다의 아침인사에 살벌하던 사니와의 눈빛은 한결 누그러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니와와 눈이 마주치자 카센 카네사다는 한숨을 쉬며 사니와를 식탁 앞에 앉혀주었다. 이 혼마루의 첫 번째 아침식사로군! 기념할 만 한데! 밥상 앞에서 신난 듯이 떠드는 츠루마루의 농담에 카센 카네사다와 야겐 토시로는 그만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기분 좋은 듯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는 야겐 토시로의 눈에 멍하니 밥그릇만 바라보는 사니와가 뜨였다.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했는데 설마 그곳에는 밥이 없는건가?
야겐 토시로는 불안한 눈으로 멍하니 밥그릇을 바라만 보는 사니와의 어깨를 툭툭 쳤다. 혹시 밥을 처음 보는거냐고 물어보려던 야겐 토시로는 사니와가 말을 못한다는 걸 생각해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건 이번에도 몸짓이었다. 밥그릇을 가르킨 다음 열심히 젓가락질 하는 시늉을 하는 야겐 토시로를 멍하니 바라본 사니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 앞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뿜는 하얀 쌀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직접 지어준 밥은 얼마만인가. 이제는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젓가락으로 조금 집어 입에 넣어 씹으니 부드러운 쌀알이 뭉개지며 따스함이 번진다.
아침을 먹고 나오니 문 앞에 콘노스케가 와있다. 사니와를 발견하자마자 반갑다는 듯이 캥캥대며 통통 뛰어와서 다리를 타고 어깨에 올라탄다. 혼이 빠져나간듯한 생기 없는 검은 눈으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사니와를 보자 머리가 아프다. 어째서 정부는 사전 교육도 안 시키고 말조차 통하지 않는 사니와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한번 서류를 살펴봐야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앞발로 부여잡은 콘노스케는 사니와를 데리고 출정문 앞으로 데려갔다.
“이곳이 바로 출정을 가는 곳이옵니다. 남사들에게 출정을 명하시면..”
“그럼 나는?”
“따라가시는건 자유입니다만 왠만하면 여기 남으시는게 조금 더 안전..”
“됐어. 나도 간다.”
콘노스케의 말을 칼같이 끊은 사니와는 멍하니 출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그래 편했던 건 어제까지였지. 사니와는 어깨에 달라붙은 콘노스케를 떼어놓고 남사들을 소집해 미리 만들어둔 도장을 하나하나 나누어주었다. 남사들이 그들과 함께 문을 나서는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니와는 그저 멍한 눈으로 허리춤에 찬 권총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앞에 역사수정주의자를 처음 보자마자 사니와의 머릿속에는 ‘괴물’이라는 한 단어만 떠올랐다. 주위에 흉흉한 기운을 두른 채 칼을 든 그들의 모습은 마치 누가 사람을 가져다가 자기 마음대로 비틀어놓은 형상이었다. 멍하니 그들을 구경하는 사니와의 어깨를 툭툭치는 하얀 손길이 있었다. 좋아.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자신을 쳐다보며 생긋 웃는 츠루마루의 말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지만 물어보는 것이 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사니와는 아무말없이 엄지를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의 몸짓을 알아들은 츠루마루를 위시한 남사들은 호탕하게 웃고는 눈을 빛내며 바로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칼과 칼이 부딪치고, 바닥에 피가 쏟아진다. 바람과 함께 흘러오는 비릿한 혈향이 익숙하다. ‘그건 네 탓이였어.’ 나긋나긋하지만 명백한 비난의 목소리가 사니와의 귀에 흘러들어온다. 눈앞이 흐려지고 모든 것이 회색으로 변한다. 귀에 울려 퍼지며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시끄럽다. 시끄러워. 시끄러워. 사니와는 중얼거리며 두 눈을 꼭 감은 채 양손으로 귀를 막아보았지만 목소리는 잦아들긴 커녕 점점 커져만 갔다. 비명소리에 정신이 빨려 들어가고 있을 때, 오른팔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오른팔이 뜨거운 액체로 젖어가고 힘이 안들어간다. 오른팔에서부터 번져나가는 찌릿한 고통에 사니와는 눈을 떴다. 그곳에는 상반신은 사람이지만 하반신은 거미를 닮은 기이한 괴물이 날카로운 앞발에 잔뜩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피를 묻힌 채 노려보고 있었다.
시끄러운 비명소리에 섞여 남사들의 다급한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사니와는 천천히 권총을 꺼내 앞발을 들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괴물을 향해 겨눴다. 첫 번째 탄환은 그 녀석의 다리를 뚫고 지나갔다. 붉은 피가 터져나감과 동시에 괴물은 시끄러운 고함을 질러댔다. 두 번째 탄환은 하반신 정 중앙에 박혔다. 정 중앙에 뚫린 구멍에서 질질 새어나오는 피가 인상 깊다.
사니와가 8발을 전부 소모했을 땐 괴물은 전투력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벌레를 닮은 다리는 구멍이 난 채 제각각 기이한 방향으로 꺾여있었고, 상체 가슴 한복판에도 구멍이 하나 뚫려있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있었다. 차가운 두 눈에 명백한 적의를 담고 사니와를 향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시끄럽다. 저 입을 다물게 하고 싶다. 사니와는 중얼거리며 총구를 붙잡고 권총의 손잡이로 그것의 머리를 내리쳤다. 단단한 것을 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사니와는 멍한 눈으로 계속 내리 찍었다. 붉은 피가 튀어나와 사니와의 온 몸을 내리 적시고 내리치는 소리는 어느새 고기를 다지는 기이한 소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는 게 좋겠군!”
재빨리 사니와의 곁으로 달려온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싸늘한 눈을 한 채, 곤죽이 된 괴물의 머리를 계속 내리치는 사니와의 팔을 붙잡고 급히 떼어냈다. 츠루마루의 팔에 붙들려 끌려갈때도 사니와는 계속 허공을 향해 휘두르며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야겐 토시로는 자신 앞에 놓여있는 적의 시체를 보았다. 비록 적이지만 이건 좀 심하다. 완전히 박살을 내 놓았다. 그의 보랏빛 눈에는 어느새 불안감이 서려있었다.
사니와 일행을 맞이한 콘노스케는 기절할 뻔 했다. 싸운 남사들은 어디하나 다친곳 없이 멀쩡한데 정작 사니와는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왔다. 어디 다치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아무 말 없이 오른쪽 팔을 가르친다. 사니와가 다쳤다는걸 알자마자 야겐 토시로는 굳은 얼굴로 그를 방에다가 밀어넣고 그의 상의를 벗겼다. 상처는 다행히 생각보다 얕은 상처였다. 이정도면 약 바르고 푹 쉬면 낫겠지. 야겐 토시로는 환부에 약을 꼼꼼이 발라준 다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의 뺨을 조용히 쓰다듬어 주었다.
“진정해 대장. 다 끝났어. 비록 못 알아듣겠지만 진정해.”
다행히 이번에는 알아들었는지 사니와의 거칠었던 숨길이 점점 안정되기 시작했다. 야겐은 다행이라며 수건에 물을 잔뜩 묻혀 몸을 덮고 있는 피와 살점들을 씻겨주기 시작했다. 야겐이 사니와를 열심히 닦아주는 동안, 콘노스케와 함께 방에 들어온 카센 카네사다는 아무 말 없이 사니와의 손을 꼭 잡고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둘이 열심히 사니와를 진정시키던 도중, 사니와의 메마른 입술에서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발을 들인 사람은...집으로 갈 수 없어.”
“대장? 방금 뭐라고 말했어?”
“방금 주군이 뭐라고 말한건가?”
두 남사의 재촉에 콘노스케는 사니와가 말한 그대로 남사들에게 통역해주었다. 콘노스케의 말을 들은 두 남사의 얼굴은 복잡하게 변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발을 들인 사람은 집으로 갈 수 없다니. 어디에 발을 들였단 말인가? 콘노스케 또한 궁금하긴 마찬가지여서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사니와에게 캥캥대면서 물어보았지만 사니와는 언제 말했냐는 듯이 입을 꾹 닫고 묵묵부답이었다.
한숨을 쉰 두 남사와 콘노스케는 지친 얼굴을 사니와를 이부자리에 눕혀주고 얼른 자라는 듯이 이불을 꼭 덮어주었다. 사니와는 느리게 눈을 깜박거리더니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몇 분후, 사니와의 신음소리가 느릿느릿하게 들려왔다. 칼에 맞았을때와는 달리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을 내뱉는다. 대체 무슨 꿈을 꾸는거야. 대장. 땀을 닦아주는 야겐은 비통한 표정으로 잠을 자는 사니와를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말라간다. 사람들의 목을 적셔주는 우물도, 땅에 박혀있는 식물들도, 밖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무들도, 그리고 그 나무에 매달린 사람들의 시체들도. 초토화된 마을, 황량한 사막. 익숙한 풍경이다. 사니와는 옆을 돌아보았다. 자신과 같은 옷을 입은 수많은 군인들이 바닥에 앉아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마을 중앙에 있는 나무에는 목이 매달린 사람들이 걸려있었다. 한 시체의 허리춤에는 덜렁거리는 곰인형이 걸려있었다.
젠장. 벌써 수확 철이군. 나무를 가리키며 하얀 이를 들어낸 채 씨익 웃는 흑인 병사의 농담에 그 자리에 앉아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수확 철이다. 이 자식아! 몇몇은 아예 배를 붙잡고 쓰러지며 웃는다. 모두의 입은 킬킬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피를 원하는 짐승처럼 흉흉히 빛나고 있었다. 휴식의 끝을 알리는 고함이 울려퍼지자마자 앉아있던 모두는 장비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해. 우리 모두를 바꾸어 놓은, 발을 들여놓아선 안되는 곳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일어나보니 어느새 밖은 어둠이 들이운 채 깜깜해져 있었다. 대체 얼마나 잔거야. 툴툴거리며 방문을 열고 나온 사니와의 눈앞에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고함과 함께 불쑥 나타났다. 방금 건 좀 놀랐다. 화들짝 놀라는 사니와의 반응에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만족하다는 듯이 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어떠냐! 방금 건 좀 놀랐지?”
“......”
“아차. 네가 말할 줄 모른다는 걸 또 까먹었군.”
“.......”
“또 그런 재미없는 눈을 하는구나.”
경멸하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사니와의 모습에 좀 웃어보라는 말과 함께 츠루마루는 사니와의 얼굴에 손을 뻗어 억지로 웃는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둥거리는 사니와의 몸짓 때문에 제대로 웃는 얼굴을 만들 수 없다. 애를 쓴 끝에 츠루마루는 입가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비록 눈은 웃고 있지 않았지만 웃는 사니와의 입가는 꽤나 아름다웠다. 실없이 웃는 츠루마루를 무시하고 사니와는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깊게 빨아 내뱉어 보아도 아직 떨리는 손은 진정이 되질 않는다.
“오호. 이런 밤에 달구경이라니. 그것도 좋지.”
“저리 가.”
“뭐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리 오라는 것이겠지? 곧 그리로 가마.”
사니와의 말을 완전히 반대로 알아들은 츠루마루는 자신을 노려보는 사니와의 옆에 꼭 붙어앉았다. 자신이 붙자마자 잽싸게 옆으로 비켜 앉는 사니와를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용납하지 않았다. 옆으로 슬금슬금 피할때마다 똑같이 옆으로 슬금슬금 붙어주니 포기한 듯이 사니와의 입에서 한숨이 푸욱 새어나온다.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아무말 없이 담배만 태우는 사니와의 모습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검은 더벅머리는 땀에 절어 내려앉아 있었고, 검은 오닉스를 닮은 두 눈은 초점없이 떨리고 있었다. 안좋은 꿈이라도 꾼 거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아직 사니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야겐 토시로처럼 몸짓으로 해봐야겠구나. 츠루마루는 사니와를 향해 여기로 안기라는 듯이 두팔을 쫙 벌려보았지만 돌아온 건 명확한 거절의 의미를 담은 싸늘한 사니와의 시선이였다.
경계하는 눈초리로 슬금슬금 뒤로 빠지는 사니와를 츠루마루는 놓치지 않았다. 잽싸게 달려들어 꼬옥 껴안아주니 사니와는 이거 놓으라는 듯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거의 발악에 가까운 몸짓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쓰다듬어주며 토닥여주니 그제야 몸부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열심히 사니와를 쓰다듬어주던 도중, 문득 가슴팍이 따뜻하게 젖어드는걸 느낀 츠루마루는 고개를 숙여 사니와를 바라보았다. 사니와는 울고 있었다. 아무 소리 없이 무표정으로 눈물만 흘리는 사니와를 츠루마루는 자신의 품으로 꼭 끌어당긴 채 그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조용히 쓰다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