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 ver1.0 2016. 11. 9. 21:37

사니와 이름 언급됩니다.


검x남사니 주의


도검난무 팬픽

캐해석 주의






흐릿흐릿한 먹구름이 뒤덮은 아침 일찍 자신의 처소에서 편히 잠이 든 오테기네는 자신을 힘차게 흔드는 손길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오늘은 딱히 할 일도 없고, 출정 일정도 당분간은 없는데 누가 깨우는 거지? 기지개를 쭉 피고 눈을 뜨니 사니와 특유의 검은 더벅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보인다. 맨날 늦게만 일어나더니 왠일로 일찍 일어난거지? 매번 늦잠을 자는 주제에 하루아침 일찍 일어났다고 자신보고 늦잠꾸러기라고 하는 나오키를 보고 오테기네는 아침부터 황당함을 느꼈다.

 

늦잠꾸러기. 왜 지금일어나. 얼마나 깨워댔는데.”

흐아암..평소에는 일찍 일어난다고.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 부탁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

부탁할 일? 나 찌르는 것 말고는 자신 없는데.”

거짓말하지마. 시키면 죄다 잘하면서. 정 뭐하면 니혼고 데려가.”

 

오테기네의 변명을 끊은 나오키의 부탁은 단순하였다. 오늘 수업을 가니 그 동안 티비 프로그램을 녹화해 줘. 오테기네에겐 간단하고도 어려운 부탁이었다. 이 혼마루에는 사니와가 들여온 이런저런 현세 문물이 많고 대부분의 남사들은 거기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오테기네는 그 대부분에 끼지 못하는 남사들 중 하나였다. 보는건 익숙하지만 다루는건 익숙하지 않다고 변명을 해 보아도 자기가 이미 쪽지에 다 적어놨으니 괜찮다며 오테기네의 불만을 다독이는 나오키였다. 무리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자신의 의견을 묵살한 채 현세의 입구쪽으로 츠루마루 쿠니나가와 함께 현세로 나서는 나오키를 보자 오테기네는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다녀온다~!”

다녀오도록 하지!”

잠깐! 정말 무리라니까!”

 

. 놓쳐버렸다. 바로 코 앞에서 슥 사라진 두 사람의 모습에 오테기네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맨발로 뛰쳐나온 보람도 없이 놓쳐버렸다. 이래서는 꼼짝없이 사니와의 부탁을 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터덜터덜 힘없이 처소로 돌아오니 갓 잠에서 깬 듯이 보이는 자신과 같은 천하삼명창 중 하나인 니혼고가 졸린 눈을 비비며 무슨 일이냐고 잠긴 목소리로 오테기네에게 물어보았고 오테기네는 한숨을 쉬며 니혼고에게 사니와가 부탁한 내용을 그대로 알려주었다. 내용을 듣자마자 니혼고는 대체 천하삼명창을 뭐라고 생각하냐며 오테기네와 똑같이 한숨을 푹 쉬기 시작했다.

 

하아. 그 더벅머리 꼬마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공감이야. 난 찌르는 것 말곤 자신 없는데 말이지.”

자신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제 어쩔 꺼지?”

어쩌겠어 부탁받은 이상 해야지.”

엇차. 그러면 도와주도록 하지.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말이야.”

 

니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찌뿌둥한 목을 좌우로 꺽어보이곤 오테기네와 함께 사니와인 나오키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자 보이는 깨끗이 잘 정리된 방을 보자 오테기네는 감탄을 하였다. 분명 너저분할 것 같았는데. 니혼고가 저 구석에 있는 코타츠를 능숙하게 펼치고 있을 때 오테기네는 나오키에게 부탁받은 녹화를 하기 위해 티비를 조심스레 켰다. 현세의 문물에 익숙하지 않을 그를 위해 나오키는 쪽지에 상세히 어떻게 티비를 켜고 어떻게 녹화를 하는지까지 다 적어줬지만 아쉽게도 겨우겨우 티비를 키는 법을 익힌 오테기네에겐 아직 녹화는 무리였다. 니혼고에게도 쪽지를 전해줘 봤으나 무리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건..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겠군.”

빨간 버튼을 누르라는데 뭐라는지 모르겠어.”

그러고 보니 여기 바로 윗층이 아와타구치 처소였지 아마?”

 

리모컨을 들고 어쩔줄 몰라하는 오테기네를 두고 니혼고는 잠시 방문을 열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니혼고는 멋쩍게 웃는 이치고 히토후리를 옆에 낀 채 다시 돌아왔다. 녹화를 하라고 부탁받았다는 니혼고의 말에 이치고 히토후리는 오테기네에게서 리모컨을 받아 능숙히 다루기 시작했다. 능숙히 티비 채널을 돌리는 이치고 히토후리를 보며 두 창은 신기함에 탄성을 내뱉었다.

 

두 창의 감탄사를 받으며 티비를 돌리는 이치고 히토후리의 머릿속에 한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주군의 설명에 따르면 애초에 이 티비는 현세의 프로그램을 녹화한 걸 틀어주는 용도인데 여기서 또 녹화가 필요한건가? 얼마나 중요한 프로그램이길래 따로 녹화까지 해서 보관하려는 걸까? 그리고 그 해답은 나오키가 녹화를 지시한 채널을 틀자마자 바로 나타났다. 채널을 돌리자마자 나타난 건 큰 경기장에 형형색색의 안장을 두른 말 6마리가 서 있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환호성 속에 열심히 경기장을 달리는 말들을 보자 이치고 히토후리는 미소띈 얼굴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오테기네와 니혼고는 저게 뭐냐며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뭐야. 기껏 보고 싶었던 게 저거야? 말타고 달리는 거라면 내가 직접 보여줄수도 있는데.”

더벅머리 꼬마도 참..그렇게 말 달리는게 좋으면 직접 타면 되는 걸 가지고..”

“...오테기네님. 주군께서 부탁하신게 정말 이걸 녹화해 달라는 거였습니까?”

! 아침부터 와서 날 열심히 깨워댔대니까?!”

오테기네님. 송구하지만 이건 녹화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재빨리 리모컨의 전원버튼을 눌러 티비를 끈 이치고 히토후리는 저 프로의 의미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저건 현세의 도박중 하나인 경마라는 것이고 자신의 주군은 지금 저거에 빠져서 돈을 탕진하고 있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깜짝 놀라는 두 창을 보며 이치고 히토후리는 설명을 끝내자마자 아예 보지 못하게 할 생각인지 리모컨을 이용해 경마가 진행중인 채널 자체를 지워버렸다. 진한 미소를 띈 채 인사를 하고 방문을 나서는 이치고 히토후리를 보며 오테기네는 조용히 속으로 사니와를 향해 명복을 빌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와서 어떻게 될지 눈에 안봐도 뻔하다.

 

한바탕 소동이 가신 방 안은 금새 조용해졌다. 지루함을 느끼며 방바닥에 드러눕는 오테기네의 눈에 술이 다 떨어졌다며 투덜거리는 니혼고의 발 아래 이치고 히토후리가 두고 간 리모컨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집어 화살표 방향을 눌러보니 티비의 화면이 바뀐다. 신기한 듯이 이것저것 눌러보는 오테기네를 잠시 쳐다본 니혼고는 허리춤에 찬 술병을 꺼내 한번 흔들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술 사오는 것을 깜빡했다. 어차피 부탁받은 일도 끝났으니 할 게 없다고 여긴 니혼고는 거하게 하품을 하며 방문을 나서려고 했다. 막 문지방을 넘으려 할때 그의 눈에 유리 진열장에 잘 놓여진 나오키의 양주가 보였다. 신기한 마음에 손으로 집어서 살펴보니 고급스러운 황금색 장식들이 병을 휘감고 있었다. 뒤에 쓰여있는 17년동안 숙성시켰다는 내용을 본 니혼고는 오테기네가 말릴 틈도 없이 재빨리 병의 뚜껑을 따 자신의 잔에 담기 시작했다.

 

오오. 이런게 있을 줄이야. 현현한 이후로 언제 한번 남만의 술을 마셔보고 싶었지.”

그거 사니와거 아니야? 마시면 사니와가 화낼걸.”

티 안나게 한잔만 마시면 되지.”

 

17년동안 숙성시켰다는 녀석의 맛을 한번 이 정삼위님이 평가해주지. 니혼고는 기대를 품고 잔에 일렁이는 주홍색 액체를 만족스러운 눈으로 한번 보더니 한숨에 쭉 들이켰다. 그리고 나오키의 양주를 맛 본 니혼고가 맨 처음 느낀 감정은 괘씸함이었다. 더벅머리 꼬마녀석. 이런 훌륭한 걸 혼자만 숨겨놓고 맛보고 있었다니... 완벽했다. 몸에서 올라오는 취기하며 깊게 풍겨오는 달콤한 향과 깔끔한 뒷맛까지. 어디 하나 나무랄 곳 없었다. 17년간 숙성시켰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니혼고는 재빨리 양주를 들어 자신의 빈 술병에 콸콸 따라 옮기기 시작했다. 사니와의 술을 통째로 들고 나르는 니혼고의 행태를 알아채자 오테기네는 열심히 만지던 리모컨을 집어던지고 니혼고를 말리기 시작했다.

 

한잔만 마신다며?! 통째로 옮기면 들킨다고! 분명 화낸다고!”

이건 수고비야 수고비. 그리고 그 꼬마는 나한테 화내기 전에 먼저 이치고 히토후리부터 어떻게 해야할걸?”

“...난 모르는 일이야.”

. 알겠다. 알았어.”

 

니혼고의 만행을 말릴 자신은 없는지 오테기네는 떨떠름한 얼굴로 계속 티비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 프로그램을 발견하자 오테기네는 멍하니 코타츠에 앉아 나오키의 것으로 보이는 과자를 오독오독 까먹으며 티비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사니와의 술을 다 마신 니혼고는 취기가 잔뜩 오른 얼굴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난 모르는 일이라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오테기네는 다시 티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멍하니 있던 오테기네는 묵직히 바닥을 울리며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나오키로 추정되는 발걸음에 당황하고 있는 오테기네에게 갓 잠에서 깬 니혼고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며 그에게 물어보았다. 오테기네가 대답할 새도 없이 방문이 드르륵 열렸다. 그리고 무사의 낮고 우렁찬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톤보키리. 방금 원정에서 돌아와 결과를 보고드립..뭐지? 너희가 왜 여기에 있는거지?”

. 뭐야. 톤보키리였나. 깜짝 놀랐다..”

방금 원정에서 귀환했다. 그런데 너희가 왜 주군의 방에 있는 거지?”

 

떨떠름한 얼굴로 자신과 심드렁하게 누워있는 니혼고를 번갈아서 보는 톤보키리에게 오테기네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니혼고가 나오키의 술을 먹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자세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오테기네의 말을 들은 톤보키리는 복잡한 얼굴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군께서 그러한 취미를 가지고 있으실 줄이야...”

취미라고 보기엔 재산을 너무 탕진하는 것 같다만?”

무사된 도리로써 주군의 명에 복종해야 하지만..참된 진언을 드리는 것 또한 무사의 도리일터..”

그렇게 고민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는건 어때? 어차피 이치고나 미츠타다가 잔소리 해줄 것 같은데?”

주군이 잘못된 길을 가는걸 알면서도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은 무사의 도리가 아니다.”

 

오테기네의 말에 낮은 목소리로 반박한 톤보키리는 마음을 굳혔는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그의 주군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 사니와가 돌아오면 많은 사람에게 잔소리를 듣겠지. 그리고 잠시 후, 밖에서 일어나는 소란 소리가 들렸다. 올것이 왔다며 바짝 긴장하는 오테기네와 아무런 미동없이 조용히 무릎을 꿇은 톤보키리, 그리고 심드렁한 얼굴로 문만 바라보는 니혼고까지. 한 자리에 모인 천하 삼명창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벌컥 문이 열리자마자 잔뜩 화가 난 그들의 사니와인 나오키가 쑥 튀어나와 오테기네에게 달려들었다.

 

!! 왜 이치고한테 말한건데?! ! ! 내가 쪽지까지 적어놨잖아!”

아야! 아야! 등 꼬집지 마! 말로 해 말로!”

말로 하게 됐냐?! 내가 너 때문에 또 용돈이 반토막 났잖아!”

 

달려오자마자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진 나오키는 오테기네의 등에 매달려 열심히 그의 옆구리와 등을 성난 꽃게처럼 꼬집기 시작했다. 등쪽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에 오테기네는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쳐봤지만 그의 손은 점점 매서워져만 갔다. 커다란 몸을 웅크린 오테기네에게 책임지라며 울상을 짓는 나오키의 눈에 텅 빈 자신의 술병이 보였다. 내 한정판. 17년 묵은 한정판이 왜 텅 비어있지? 지금은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는 아주 귀한 술이다. 매번 양주로 병나발을 부는 나오키마저도 일주일에 한잔 마시는 비싼 술이 바닥을 드러낸 채 텅 비어있었다. 가장 유력한 범인으로 보이는 니혼고를 쳐다보자 니혼고는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뭐야. 내 술. 이게 왜 여기 굴러다녀?!”

아 그 녀석이라면 내가 마셨다. 제법 쓸만한 녀석이더군. 잘마셨다.”

......그게 얼마짜린지 알기나 하냐?!”

모른다. 다만 너가 나 몰래 마셨다는 건 알고 있지. 이렇게 좋은걸 혼자 마시다니 그건 주도에 어긋난다고?”

 

니혼고는 잘 마셨다는 인사와 함께 왁왁거리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방문을 나섰고 니혼고의 뒤를 따라 오테기네가 후다닥 달아났다. 찌르는 것만 잘한다더니 달리기 또한 수준급이다. 어느새 방 안에는 조용히 정좌한 톤보키리와 멍하니 술병만 바라보는 나오키만 남아 있었다. 주군. 감히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자신을 향한 평소의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달리 엄숙한 톤보키리의 목소리가 불안하다.

 

톤보키리 무슨 말이야? 원정일이라면 잠시 쉬어도 돼.”

원정일이라면 언제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주군의 취미생활에 관한 일입니다.”

..잠깐만! 그 이야기라면 방금 이치고와 미츠타다에게 질리게 들었다고!”

주군. 이건 무사로써, 그리고 주군의 충실한 충복으로써 드리는 제 진언입니다! 부디 진중히 들어주시면..”

..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