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오리지널 사니와 언급됩니다.
검x남사니 주의
도검난무 팬픽
캐해석 붕괴 주의
(오리지널 사니와를 쓰게 허락해주신 여우비님! 감사합니다!)
한적한 시골의 한 술집 안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시끄러운 컨트리 음악과 함께 당구를 치는 백인과 흑인으로 구성된 구성원들 가운데서 한 테이블의 양복입은 동양인들은 자연스레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맞은편에는 한 덩치 큰 백인 남성이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한손으로 병을 잡고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머리 하나 정도 더 커보이는 남성의 허벅지만한 팔뚝 여기저기에는 거친 흉터들과 함께 살벌한 문신이 빼곡이 새겨져 있었다. 어느새 술 한병을 다 비운 남성은 솥뚜껑만한 손바닥으로 짧은 수염이 나 있는 턱을 거칠게 쓱쓱 문질러 닦더니 맞은편에 앉은 동양인들에게 거친 목소리로 온 목적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 하나 보려고 멀리서 이딴 텍사스 촌구석까지 왔구만.”
“아 네..! 온 목적은 다름이 아니라..”
“더듬지 말고 빨리 말해.”
“그...사람 하나 아냐고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인데?”
“ooo씨입니다. 예전에 같은 부대에 있으셨다고 들어서요..”
“개소리마. 그런 새끼 우리부대에 없었어.”
걸걸한 남성의 욕 섞인 반문에 양복을 입은 일행들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큰 문제라는 듯이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는가 하면 포기하자면서 실랑이까지 벌어진다.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 남성은 바닥에 질퍽한 가래침을 퉤 뱉고선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양복을 입은 일행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사진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 일을 의뢰한 담당자의 사니와인 나오키의 사진이였다. 사진을 받아보자마자 험상궂던 남성의 표정이 눈 녹은 듯이 사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남성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양복입은 남성들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슬슬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 새끼 이름이 그거였어? 빌이라고 부르다보니 몰랐네!”
“비,빌이요?”
“그래! ‘총잡이 빌!’ 요즘 시대에 구닥다리 피스메이커를 4개나 차고 다니는 어린놈의 새끼였지! 그것도 노획한 걸로! 얜 요즘 뭐하고 산대냐?”
“저기..이분 죽었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빌이라는 이름대신 나오키라는 이름을 쓰며 아직까지 멀쩡히 살아있긴 하지만 맡은 일은 맡은 일이다. 괜히 여기에서 그의 정체를 들어내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양복입은 남성들은 서로 눈짓을 하며 말을 맞추기 시작했다. 몇 일전에 길거리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연고자고 뭐고 아무것도 아는것이 없어서 서류 작성을 위해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다 들통날만한 뻔한 거짓말이였지만 다행히도 앞에 험상궂은 남성은 그 거짓말에 넘어갔는지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커다란 눈에서 맑은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그러게 같이 텍사스로 가자고 했는데. 왜 말을 안 들어서..이새끼만큼 리볼버를 잘쏘는 놈도 없었는데..”
“정말로 유감입니다...”
“크흡..그래서. 얘가 뭘했는지 알고 싶은거야?”
울음 섞인 남성에 말에 양복 입은 남성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짓으로 커다란 술병을 하나 주문하더니 마개를 따고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하였다. 좋아. 그렇다면 얘가 뭘했고 어떻게 살았는지 다 말해주지. 취기와 울음이 섞인 남성의 말에 양복 입은 사람들 중 하나가 몰래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까부터 코가 간질간질하고 귀가 가렵다. 사니와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츠루마루 쿠니나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너 지금 속으로 내 욕하고 있지? 근거없는 사니와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뭐가 우스운지 배를 잡고 기분좋게 하하하 소리 높혀 웃기 시작했다. 츠루마루의 웃음이 커질 때마다 사니와의 눈은 점점 가늘게 변했지만 츠루마루는 그것마저도 재밌다는 듯이 사니와의 새까만 머리를 손으로 헝클어놓기 시작했다.
“너에 관한 생각은 맞긴 하지만..음..뭐라고 해줘야할까.”
“임마. 욕 맞구만.”
“아니 그러니까 욕은 아니라니까 그러네.”
어느새 사니와와 츠루마루는 마당 한복판에서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인상을 푹푹 쓰는 사니와와는 달리 츠루마루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고 그런 모습이 사니와의 심기를 더욱더 자극시키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질것만 같았던 유치한 말다툼은 구석에서 들리는 여우 우는 소리에 잠시 중단되었다. 자신을 찾는 콘노스케의 소리에 사니와는 말씨름을 멈추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사니와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개같이 지냈다. 어쩔래.”
“...여전하시군요. 오늘은 선물을 가져왔으니 화는 그만 내주세요.”
콘노스케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자신이 메고 있는 커다란 보따리를 풀어 바닥에 펼쳐놓았다. 선물의 내용을 보자마자 심드렁하던 사니와의 눈이 커다랗게 뜨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놓여져 있는 건 기나긴 가죽벨트, 그리고 자신이 애용하던 권총 4자루, 그리고 수많은 탄환들이였다. 사니와는 떨리는 손으로 권총 하나를 집어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갈색의 손잡이. 적당한 무게. 동그란 실린더. 전쟁 때 자신이 사용하던 콜트 피스메이커였다. 신기한 듯이 여기저기 살펴보는 사니와의 귀로 자부심을 가득 담은 콘노스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겉모습은 같아보여도 사니와님에게 맞춰 어제 새로 만든 겁니다요!”
“난 오리지널이 좋은데.”
“에이 그런 소리 마시고...”
“어쨌든 잘 쓴다.”
사니와는 익숙한 듯이 벨트를 허리에 차고 권총들을 하나하나 권총집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뒤에서 생글생글 웃던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서두르라는 듯이 사니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이봐. 이럴 때가 아니라고. 자칫하면 늦는다.”
“기왕이면 영원히 늦었으면 좋겠다.”
“그런 소리 말고.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맞습니다요. 원래대로라면 다같이 들어야하는 수업이지만 사니와님을 위해 특별히 자리를 마련한겁니다!”
수업이란 소리에 사니와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조용히 손으로 짚었다. 몇일 전, 그의 담당자는 그에게 자그마한 종이를 하나 전해주었다. 하얀 종이 맨 위에는 사니와 양성 프로그램이라고 크게 써져 있었고, 그 아래로는 프로그램의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프로그램대로라면 최소 4주동안은 뭐하는지 모르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미쳤냐? 총 맞고 싶어? 사니와의 진심어린 협박에 담당자는 벌벌 떨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말만 반복했고, 입구에 지뢰를 설치하겠다는 사니와의 협박도 통하지 않아 결국 수업을 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오늘은 선생이라는 사람과 대면을 시켜준다는 자리니 반드시 늦지말고 가라는 담당자의 잔소리가 아직까지도 귀에 어른거린다.
결국 포기하고 츠루마루 쿠니나가와 함께 현세로 가는 입구를 넘으니 저 멀리 자동차가 보인다. 빨리 오세요! 늦었어요! 담당자의 다급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사니와는 입에 담배를 꼬나문 채 거북이가 기어가듯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모자마자 담당자는 발을 동동구르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왔어요! 늦지 말라고 했잖아요!”
“늦을 수도 있는 거지. 늦기 싫으면 빨리 시동 걸고 밟아.”
“무슨 말을 그리하나?. 미안하단다. 갑자기 콘노스케가 방문해서 말이지. 이제 그만 화를 푸는게 어떤가?”
츠루마루 쿠니나가의 진심 어린 사과에 담당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다 탄걸 확인하자마자 담당자는 차의 패달을 밟았고, 그들이 탄 차는 산길을 미끌어지듯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조수석에서 골아떨어진 사니와와는 달리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끝없이 담당자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담당자는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심 성의껏 그에게 답해주기 시작했다.
“우리 주군을 가르칠 스승되는 자는 어떤 사람이지?”
“아주 훌륭하신 분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니와를 배출하신 아주 믿음직한 분이시죠. 현재는 사정이 있어서 사니와 업무 대신 사니와 교육을 맡으셨지만요.”
“한번 꼭 만나보고 싶구나. 사니와를 잘 부탁한다는 말도 해야겠지.”
담당자의 자신감 섞인 목소리에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마음을 놓고 씨익 웃기 시작했다. 이윽고 자동차는 약속 장소인 한 호텔 로비에 멈추어 섰다. 빼곡한 야자수를 지나 신분증을 제시하고 미리 예약한 식당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사니와의 말썽이 시작되었다. 잠깐 바람 쐬고 올래. 사니와의 무리한 부탁에 담당자는 안 된다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지만 사니와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았다.
“곧 있으면 선생님이 도착하신다고요!!”
“아직 30분이나 남았잖아.”
“안돼요! 자리를 지키세요!”
“멀리 안 나갈게. 나갔다 온다.”
그 말만 남긴 채 사니와는 시내 한복판을 향해 홀로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돌아오라는 담당자의 절규하는 소리가 바락바락 울리기 시작했지만 사니와는 다 무시하고 멍하니 앞으로만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가 고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는 시내 한복판에 달랑 놓여있었다. 손목에 찬 시계는 어느새 약속시간이 가깝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일단 택시라도 타야겠다 싶어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지만 낡은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아까 담당자 차에서 떨어뜨렸나. 사니와는 칫하고 혀를 차기 시작했다.
아침도 못 먹고 나와 배고픈데다가 생전 처음 보는 곳에서 길까지 잃었다. 연락할 수단조차 없다. 엎친데 덮친격이네. 사니와는 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걸어온 곳으로 다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한 빵집 앞이었다. 고소하고도 달콤한 빵굽는 냄새에 사니와는 약속시간도 잊은 채 멍하니 진열대만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적하다. 거리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마침 주인도 빵 굽는데 열중한 나머지 이쪽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하나만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에 사니와는 진열대에 놓인 빵에 천천히 손을 뻗기 시작했다.
손가락만 굽히면 빵을 잡을 수 있을 거리까지 도달했을 때, 뒤에서 불쑥 손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그의 팔을 꽉 잡아챘다. 경찰에게 걸린 건가 싶어 다급한 마음에 재빨리 팔을 뿌리치고 도망치려 할 때 그의 뒤에서 힘이 없지만 어딘가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보다 키가 훨씬 커보이는 수수한 기모노 차림의 은발의 청년이 서 있었다. 안경너머로 보이는 검은 눈은 덜덜 떨리면서도 그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도, 도둑질은 안돼요..”
“알고 있다만.”
“배가 고프신 거라면 제가 사드릴게요.”
“아니 그럴 필요까진..”
청년은 사니와의 말을 다 듣지 않은 채 멋대로 가계 안으로 들어가 그가 훔치려던 빵을 하나 사오더니 배시시 웃으며 먹으라는 듯이 사니와 앞에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친절에 사니와는 차마 받지 못하고 말쑥한 청년의 얼굴과 빵만 번갈아 보았다. 대놓고 경계하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조용히 그에게로 다가와 그의 손에 빵을 쥐어주었다. 배 많이 고프셨나요? 청년의 조용한 질문에 사니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빵을 으적으적 씹어먹기 시작했다. 게걸스럽게 빵을 집어먹는 사니와의 모습을 청년은 잠시 훑어보았다. 몇십년은 묵은 듯이 보이는 다 헤진 가죽 외투에 여기저기 찢어진 청바지. 그러면서도 때 타지 않은 깔끔한 얼굴. 노숙자라고 보기엔 너무나 깔끔하다. 어디서 쫒겨나온건가? 청년이 찬찬히 그를 살펴보기 시작하는걸 알자마자 사니와의 눈이 하지 말라는 듯이 어느새 잔뜩 적의를 담아 그를 올려다 보았고, 청년은 손사래를 치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죄, 죄송합니다. 초면에 실례를..”
“노숙자 아니야. 엄연히 직업이 있다고.”
“아. 네..”
“질문 하나만 하자. 혹시 이 근처에 야자수가 달린 호텔이 있어? 거기에 내 일행이 있는데..”
“아 그곳이라면 잘 알아요. 저도 그곳으로 가고 있거든요.”
청년의 대답에 사니와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선 청년이 이끄는대로 말없이 졸졸 따라갔다. 자신을 졸졸 따라오는 사니와를 보자 청년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복판에 의구심이 천천히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그 호텔은 오늘 하루 전부 정부에서 빌렸는데..조용히 그의 정체를 추리하는 청년의 코에 매캐한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침을 하며 뒤를 보니 어느새 담배를 피고 있는 사니와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기...길 한복판에서 담배를 피면 안돼요!”
“아무도 없는데.”
“이..이리로 오세요!”
아무런 표정 없이 담배를 뻑뻑 피는 그를 잡아끌고 눈에 보이는 골목길에 집어넣었다. 멍하니 담배를 뻑뻑 피는 그를 보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안 그래도 교통체증 때문에 늦었는데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 청년은 마음속으로 자신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거푸 사과하기 시작했다. 사니와의 담배가 열심히 타들어 갈 때, 골목길 저 앞에서 거친 고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멍하니 담배만 피고 있는 사니와랑은 달리 화들짝 놀란 청년이 고함이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야구 방망이와 쇠파이프로 무장한 불량배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 3명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약속시간에 늦은 것도 모자라 이상한 사람도 만나고 게다가 이젠 불량배라니..오늘은 정말 악순환의 연속이다.
“야! 니네 뭐야! 누가 여기 들어오래!”
“죄, 죄송합니다..”
“됐고 돈 좀 있냐?”
“그, 그런 건 옳지 않아요..범죄인걸요..”
청년의 말이 듣기 싫었는지 불량배들은 청년의 말을 끊고 바닥을 향해 쇠파이프를 큰 소리나게 내리 쳤다. 위협을 하며 다가오는 불량배들의 모습에 하얀 머리의 청년은 오들오들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선 조용히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기 시작했다. 청년이 가슴을 졸일 때 크나큰 괴음이 공기를 찢으며 연거푸 울려 퍼졌다. 천둥소리라고 하기 에는 너무나도 묵직했다. 화들짝 놀란 나머지 청년은 고개를 숙이고 귀를 틀어막았다. 동시에 그의 코에 매캐한 냄새가 흘러오기 시작했다. 담배냄새가 아닌 그보다도 훨씬 묵직하고 비릿한 화약 냄새였다. 놀란 눈으로 옆을 바라보니 담배만 피는데 열중하던 사니와의 손에 연기를 내뿜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총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평온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방금 사람에게 총을 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진짜 사람에게 총을 쏜건가?! 다급해진 청년은 불량배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다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가슴을 졸이며 당황하는 청년의 귀에는 불량배들의 절규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 비명이 듣기 싫었는지 뒤에서 총을 쏜 장본인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리 안 다물면 다음엔 머리에 쏜다.”
“히..히익!!”
“궁뎅이에 총 맞기 싫으면 있는 거 다 내놓고 조용히 꺼져.”
사니와의 진심어린 협박에 불량배들은 황급히 자신들의 지갑을 바닥에 던져놓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저 너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골목길에 남은 건 부들부들 떠는 청년과 평온히 담배를 피며 불량배들의 지갑을 뒤적이는 사니와 밖에 남지 않았다. 젠장. 기껏 3발이나 쐈는데 든게 이거밖에 없다니. 혀를 차며 불만을 토로하는 사니와의 귀에 덜덜 떨리는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 방금 뭐하신거에요!”
“뭘 하긴. 손 좀 봐준거지.”
“사, 사람을 총으로 쐈잖아요!”
“그럼 총으로 쏘지. 총으로 내리치나?”
이젠 누가 불량배고 누가 희생잔지 모르겠다. 자신을 보며 덜덜 떨며 뒷걸음질 하는 청년을 사니와는 조용히 스쳐지나갔다.
“아 그러고 보니 잊고 있던 게 있네.”
“뭐, 뭐를요?”
“자 빵 값.”
연기를 내뿜는 권총을 멋들어지게 휘리릭 돌리며 권총집에 집어넣은 사니와는 지폐 몇 장을 꺼내 덜덜 떠는 청년의 주머니에 구겨 넣어주고 택시를 타고 떠나기 시작했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청년은 하다못해 병원에라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재빨리 불량배들이 도망친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결국 약속시간에 늦어버렸다. 그것도 한 시간씩이나. 청년이 그들을 쫒아갔을 때 그들은 힘이 다했는지 골목길 막다른 곳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다급히 구급차를 부르고 대원들이 올때까지 기다린 청년을 맞이한 것은 경찰의 조사였다. 누가 쐈는지 혹시 일행인지 끝없이 물어보는 경찰의 질문세례에서 그를 구한 건 다름 아닌 정부였다. 그의 신변을 걱정한 정부는 대충 사건을 묻으라는 식으로 경찰에 지시하였고, 총을 맞은 사람 또한 인근에서 알아주는 불량배였길래 경찰 또한 더 이상 사건을 키우지 않고 묻어버렸다.
경찰서에서 떠나 황급히 약속장소에 가니 자리에 엎어져 있는 세 사람이 보인다. 새하얀 기모노를 입은 자는 아마도 자신이 맡은 사니와의 츠루마루 쿠니나가겠지. 그들이 안 떠난걸 알자마자 청년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청년이 온 걸 알자마자 엎어져 있던 사람들 중 하나인 담당자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청년에게로 달려가 그의 손을 꼭 마주잡았다.
“오, 오셨군요! 경찰서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신가요?!”
“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가르칠 사니와는 어느 부..어라..?”
“으하함..선생님이 이렇게 늦다니...응?”
“음? 둘이 아는 사인가?”
낡은 코트에 맞지 않는 수려한 외모. 아까 총을 쐈던 그 사람이다! 청년이 츠루마루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얘기하는 그를 가르키며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담당자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청년에게 사니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타카후미님. 이쪽은 새로운 사니와이신 나오키 님입니다. 성격이..좀..그렇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나오키님. 이쪽은 전에 말씀드렸던 선생님이신 타카후미님 이십니다. 반드시!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알았다니까 그러네. 타카후미씨? 타카후미 선생님? 어쨌든 잘 부탁 드립니다?”
“다..당신...! 아..아까!!”
“어라 서로 아시는 사이십니까?”
“그냥 저냥.”
사람에게 총 쏜걸 그냥 저냥이라고 하다니. 뭐라고 한 소리 하려던 타카후미에게 사니와는 장난스레 씨익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아보았다. 동시에 입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대어주었다. 그런 사니와의 모습에 타카후미는 앞으로 치를 고생이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눈 앞이 깜깜하다. 사니와 나오키에 대한 타카후미의 첫 인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