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오리지널 사니와 언급됩니다.
검x남사니 주의
도검난무 팬픽
캐해석 붕괴 주의
깊은 밤, 모두가 잠이 들 늦은 시간인데도 사니와의 방앞에 남사들이 모여 있다. 왜왔냐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사니와를 앞에 두고 남사들은 잠시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먼저 말문을 연 건 야겐 토시로였다. 대장! 사랑해! 기분 좋게 생긋 웃으며 건넨 야겐의 몸쪽으로 던지는 직구와 같은 말은 사니와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하였다. 매번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츠루마루 쿠니나가의 의견이였다. 하지만 사니와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니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 같다.
“너 지금 뭐라고..?”
“주군 사랑한다.”
“사랑합니다. 주인님!”
“이봐. 사랑한..”
“너네 단체로 약먹었냐?”
츠루마루 쿠니나가의 말을 칼처럼 끊은 사니와는 자신 앞에 옹기종기 모여 직구를 던져대는 남사들을 노려보았다. 밤중에 불러서 와 봤더니 단체로 고백을 하고 앉아있다. 저녁밥 먹은 것이 얹혔는지 가슴이 더부룩해진다. 답답한 마음에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무니 기분이 좀 나아진다. 왜 갑자기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고 그러지? 모여있는 남사들을 지긋이 노려보니 겁먹은 단도들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난다.
“저어..죄, 죄송해요 주인님..”
“하아..겁줄 의도는 없었는데..”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울먹이며 호랑이들과 함께 제 형 뒤로 숨는 고코타이를 보니 치밀었던 화가 차갑게 식는다. 천천히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그제야 울음을 그치며 헤헤 웃기 시작한다. 예쁘게 주근깨가 내리 앉은 고코타이의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장난스레 콕 눌러준 사니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둘러 싼 남사들을 쳐다보았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남사들과 눈이 마주치자 허옇게 질린 얼굴을 한 채 어색한 분위기를 피해 방으로 쏙 들어 가버렸다. 자리에 드러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으니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와 함께 벚꽃과도 같은 분홍빛 머리카락을 가진 남사가 들어왔다. 단정한 갈색 내번복에 하얀 스타킹, 아와타구치의 일원인 아키타 토시로였다. 아예 같이 자려는 듯이 베게까지 가져왔다.
“헤헤헤. 주군 주무시려는 건가요? 자리를 마련해 드릴게요.”
“고맙다. 아키타 토시로.”
“주군. 옆에 누워도 되나요?”
“..맘대로.”
사니와의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불구하고 아키타 토시로는 기쁜지 방긋 웃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고 사니와 곁에 누우니 사니와는 어느새 평소의 무감각한 눈이 아닌 슬픔과 그리움을 가득 담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곁에 찰싹 달라붙어 허리를 꼭 끌어안으니 사니와의 메마른 목소리가 귓가에 작게 들려온다.
“옛날에 너 만한 동생들이 꽤나 많았지.”
“헤에.. 그런가요? 처음 알았어요!”
“열 명이였어. 너만한 동생은.”
“우와. 엄청 많네요! 지금은 물론 다들 늠름하게 커져 있겠죠?”
“아니. 다 죽었어..”
사니와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키타 토시로의 가슴은 철렁 가라앉았다. 괜한 실언을 해서 사니와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니 괜찮다는 듯이 머리위에 따스한 손이 조용히 놓인다. 괜찮아. 상관없어. 자신을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속삭이는 사니와의 미소는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죄송해요 주군. 정말 죄송해요. 사니와의 품 안에서 아키타 토시로는 조용히 울상지으며 그에게 들리지 않을 사과를 속삭였다.
사막 한복판에서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군인들은 한 사람을 에워싸고 발길질을 퍼붓고 있었다. 누굴 죽인다음 그걸 입었냐?! 연합군의 옷을 입은 한 남성을 향한 군인들의 욕설과 폭력은 끊이지 않았다. 청년은 멀찍이 떨어져 멍하니 담배만 피고 있었다. 운 없는 새끼. 옆에 앉아있던 백인 병사는 사로잡힌 적군을 향해 씹어 뱉어내듯이 동정심을 표했고, 청년 또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로잡힌 것도 운수 더러운데 하필이면 우리 군복까지 입었다. 국제 조약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합법적으로 처형할 수 있다.
‘야! 우리 신병 어디갔냐?!’
히히덕 거리던 군인들은 어느새 그들의 신병을 찾았다. 이윽고 저 멀리서 공포에 질린 한 병사가 자기머리에 맞지 앉는 방탄헬멧을 덜렁이며 그들에게 뛰어갔다. 군인들은 웃으면서 그에게 권총 한자루를 주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의도는 간단했다. 너가 한번 죽여봐. 의도를 알아채자마자 병사의 팔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더욱더 커지는 비명소리와 웃음소리에 청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조용히 공기를 울려퍼지는 단말마의 비명은 총성소리에 묻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청년은 조용히 신병을 향해 속삭여 주었다.
‘발을 들여놓은 걸 환영해 신입.’
아침의 시작은 매우 시끄러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문을 열자마자 고함을 지르며 불쑥 나타난 츠루마루 덕분에 그나마 남아있던 잠도 다 깬 것 같다. 같이 잔 아키타 토시로는 간밤에 악몽을 꾸었는지 눈가가 새빨갛게 퉁퉁 부어있었다. 잠자리가 안 좋았냐 조심스레 물어보니 눈가를 비비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간밤에 또 악몽을 꾸셨어요. 자신의 옆에 쪼르르 달려와 사니와의 귀에 안들리도록 조용히 자신에게 속삭이는 아키타 토시로의 말에 츠루마루의 표정은 복잡 미묘해졌다. 아와타구치 별채쪽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아키타 토시로의 뒷모습을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니 옆에서 깐죽대던 츠루마루가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표정이 뭐 어때서.”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인사를 못했군! 사랑한단”
“그만 하랬지.”
아침 인사를 칼같이 끊은 사니와는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츠루마루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까 아키타 토시로에게 보여준 걱정을 담은 봄과 같은 따스한 눈빛과는 달리 츠루마루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겨울 칼바람과 같이 냉랭하기 그지없다. 같이 씻으러 가자며 어깨에 팔을 감으니 이제야 눈빛이 좀 풀린다. 욕실에 도착하여 옷을 벗고 있는 츠루마루는 고개를 힐끗 돌려 묵묵히 옷을 벗어 바구니에 쑤셔 넣는 사니와를 보았다. 하얗고 호리호리한 몸 여기저기에는 상처들이 여기저기 대나무 잎처럼 길죽이 나있었다. 특히 심한건 등쪽이였다. 얇은 등에는 무언가 날카로운것이 스쳐지나간듯이 길쭉한 흉터도 있었고 작은 무언가가 뚫고 지나간듯한 상처들도 있었다.
목에 난 상처가 전부일 줄 알았는데. 눈앞에 보이는 상처투성이 몸에 츠루마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놀라움은 싫다. 걱정스레 보는 츠루마루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사니와의 검은 눈과 츠루마루의 황금빛 눈이 서로 마주쳤다. 뭘 그리 멍하니 봐. 틱틱대는 사니와의 말에 츠루마루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선 입꼬리를 들어 애써 웃기 시작했다.
“자 얼른 씻으러 가자고. 늦으면 미츠보가 또 잔소리를 할테니.”
“멍하니 있던 건 츠루마루잖아.”
“그런 사소한건 신경쓰지 말고. 어서 들어가자.”
시간을 잡아먹은게 누군데. 사니와는 불만스럽다는 듯이 툴툴거리며 욕탕 안으로 들어가 대충 씻기 시작했다. 뒤를 힐끗 돌아보니 츠루마루가 이를 드러내며 장난스럽게 씨익 웃는다. 꺼림직하다. 입은 웃고 있으나 눈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동정하는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 차갑게 가라앉은 사니와는 욕탕에서 나와 옷을 입고 그의 업무실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싸늘하게 식어있는 사니와의 옆에 츠루마루가 장난스레 앉자마자 사니와는 눈을 부릅뜨고 츠루마루를 노려보았다.
“음? 또 뭐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거지?”
“..그런 눈으로 보지마.”
“무슨 눈을 말하는거지?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단다.”
“불쌍한 사람을 보는듯한 눈말이야. 동정하지 말라고.”
“미안하지만 그것만은 안되겠군.”
사니와의 말을 끊은 건 츠루마루였다. 평소의 익살스러운 행동과는 달리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그가 지금 이 순간만은 진지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인간을 보살펴 주는건 신이 하는 일중 하나니 말이지. 사니와는 기분좋은 듯이 싱긋 웃는 츠루마루의 멱살을 붙잡고 자신쪽으로 끌어당겼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글생글 웃으며 쳐다보는 츠루마루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겠지. 좋은 생각이 하나 났다. 이 녀석의 입을 다물게 할 좋은 방법이.
“넌 내가 무슨 말 해도 소용없겠지. 그치?”
“이건 좀 놀라운걸.. 얘기가 통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내기 하나 할까?”
내기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흥미를 가득 담은 채 사니와에게 내기의 내용을 물어보았다. 신난 얼굴로 자신에게 찰싹 붙는 츠루마루를 두 팔로 힘겹게 밀어낸 사니와는 내기의 내용을 츠루마루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내 과거를 알아내봐. 간단하고도 힘든 내기였다. 츠루마루는 어떻게 알아내냐며 항의를 해 보았지만 사니와는 정부나 담당자가 있으니 그리 불리한 내기는 아니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좋아. 기한은 언제까지지?”
“한 달. 충분하지?”
“좋아. 만약에 내가 이기면 어떻할거지?”
“들어줄 수 있는 한도 안에선 뭐든지 들어줄게. 뭐든지.”
“좋아.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츠루마루는 사니와와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받아낸 뒤, 재빨리 방문을 박차고 나가 콘노스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 츠루마루의 뒷모습을 향해 사니와는 비릿한 미소로 비웃어주었다. 어디 한번 용써봐라. 다 알고 난 후에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아침부터 기운을 쏙 뺐더니 피곤하다. 조용히 눈을 감은 사니와는 점점 잠에 빠져들었고, 사니와는 어느새 회색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곳에서 사니와는 다 찢어진 갈색코트가 아닌,모래와도 같은 진한 갈색이 울긋불긋한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 새끼들. 항복 안한대. 미친놈들.’
동료병사의 말에 모두가 동요했다. 이렇게까지 코너에 몰아넣었는데 항복은커녕 저항만 더욱더 거세진다. 이제는 누가 민간인이고 누가 적군인지도 알 수 없다. 동료는 점점 줄어만 가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혹한 진실에 모두가 아무 말없이 침묵만 지키고 있을 때, 그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항복 안 했으면 좋겠어. 마지막 한놈까지 다 죽여버릴 수 있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는 놀란 눈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미쳤냐며 큰소리를 치는 사람부터, 드디어 정신이 나갔다며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단 한사람, 그들의 상사만이 그를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며 걱정했다.
사니와가 꿈속에 있을때 콘노스케는 난감한 얼굴로 자신의 눈 앞에 서있는 츠루마루 쿠니나가를 올려다보았다. 대뜸 자신을 집어들더니 사니와의 과거를 알려달라고 우긴다. 서류에도 없는 내용을 무슨 수로 알아 내냐며 항의를 해 보았지만 츠루마루는 그런건 너희가 어떻게든 해보라며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일단 출생지와 가족부터 알아보는게 좋지 않겠나?”
“저기 사니와님은 고아입니다..”
“..그러면 대충 머물렀던 곳이라도 찾아보게나.”
“..알겠습니다. 사람을 보내 주변 탐문이라도 해보죠.”
왜 갑자기 알아보려고 하냐는 콘노스케의 질문에 츠루마루는 사니와와의 내기 내용을 그대로 말해주었고, 조심성 없이 신과 약속을 한 사니와의 경솔한 행동에 콘노스케는 앞발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럴 자는 아니지만 만약 츠루마루가 이상한 걸 부탁하면 그땐 어쩌려고 아무 계획 없이 덜컥 약속을 한단 말인가? 본명이라도 알려달라고 하는 날에는 꼼짝없이 카미카쿠시행이다.
골이 지끈거린다는 듯이 머리를 부여잡는 콘노스케와는 달리 츠루마루의 가슴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오르기 시작했다. 사니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상관없다. 다 알아내고 난 이후엔 더 이상 재미없는 표정을 지을 수 없게 꽉 끌어안아 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저 차가운 꼬마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겠지. 그것만큼 놀랄 일은 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