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 ver1.0 2016. 7. 14. 22:02

오리지널 사니와 언급됩니다.

검x남사니 주의

도검난무 팬픽

캐해석 붕괴 주의


안개가 낀 대나무 숲안에 바람을 타고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잡담을 나누면서 대나무 숲을 지나는 남사들의 모습은 출정을 나왔다기 보단 뒷마당에 마실 나온 모습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스스로 자멸한다던가 혹은 기운이 쭉 빠져있는 적들의 모습을 본 남사들의 심정도 산보를 다녀온다는 마음가짐이였다. 자신을 노린 채 달려들다가 넘어져 짱돌에 머리를 박은 이후로 조용해진 적 태도를 보는 이치고 히토후리의 마음도 그러하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이치고 히토후리는 다른 남사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려 좌우를 둘러보았다. 자신보다 오래 주군을 모신 자신의 형제 야겐 토시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평상시에 겪어 왔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행동하였고, 대태도인 지로타치는 허리춤에서 술병을 꺼내 뚜껑을 따고 있다. 초기도인 카슈 키요미츠는 매니큐어까지 챙겨 와서 손톱에 바르고 있었다. 같은 태도인 미카즈키 무네치카와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아예 전투에는 관심없다는 듯이 잡지를 펼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츠루마루야 이걸 보거라.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이라는구나.”

“오오. 이거 멋진걸.. 옆쪽에 똬리 틀고 있는 용 좀 보게나.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군.”

“밑에 150만 엔이라고 적혀있는데 이게 뭘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구나..오늘 가서 콘노스케에게 부탁해야겠구나.”

“그거 좋은데! 나중에 바둑판이 오면 한수 부탁하지.”

“핫핫핫. 호락호락하진 않을게다.”

 

서로를 바라보며 하하하 웃는 두 태도를 보고 이치고 히토후리는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바둑이 아니라 적에게 불타올라주셨으면 하는데. 탄식을 하는 이치고 히토후리의 눈에 그 둘을 노리고 달려드는 적 창이 보였다. 다급한 마음에 고함을 쳐 보았으나 이미 바둑판에 눈이 먼 두 남사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혀를 차고 재빨리 본체를 뽑고 달려들려고 했으나 적의 발은 너무나도 빨랐다. 어느새 적의 창이 두 사람에게 가까워졌고 이치고 히토후리의 가슴이 절망으로 물들어 갈 때였다.

 

적 창은 자신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두 남사의 옆을 스쳐 지나가 산기슭 아래로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꾸에에엑 하는 비명소리가 산기슭 아래서부터 울려 퍼진다 싶더니 수박 깨지는 소리가 들린 것을 끝으로 고요한 침묵이 이어졌다. 뜻밖의 기적에 이치고 히토후리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두 남사의 손에서 잡지를 빼앗았다.

 

“후우..두 분 다 전투 중에는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너무 걱정 말거라 이치고야. 우리 사니와의 점괘가 나쁘게 나오지 않았더냐? 별일 없을게다.”

“아무리 그래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이치고의 얼굴을 붉힌 열변에도 불구하고 미카즈키와 츠루마루는 하하하 웃기만 했다. 오히려 미카즈키는 너무 걱정한다고 이치고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이치고는 아직도 방금 일어난 일이 믿기지가 않는지 고개를 숙여 산기슭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점괘가 반드시 반대로 일어난다지만 이정도면 이젠 점괘가 아니라 저주 수준이다. 혹시 주군은 우리 몰래 점을 대충 보고 상대방에게 저주를 거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면 이렇게 오합지졸인 적군의 상태가 설명이 안된다. 아니면 적군의 기만책일 수도 있다. 이렇게 오합지졸로 시간을 끌면서 대장이 있는 곳에 정예병을 배치해 놨을 수도 있다. 이치고 히토후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본체의 손잡이를 꾹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정예병이 아닌 산 송장같은 비루한 몰골을 한 대장을 보자마자 이치고 히토후리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긴장감 없는 전투를 마치고 본성으로 돌아오니 여기저기 가벼운 상처를 입은 사니와와 그 옆에 앉아서 열심히 연고를 발라주고 있는 시시오가 보였다. 갑자기 왜 다쳤냐고 물어보니 현세에서 운전면허라는 걸 따려다가 다친거라고 한다. 점괘가 좋게 나왔는데 왜 이모양이냐는 사니와의 투정에 남사들의 등골이 서늘해진다. 점괘가 좋게 나왔는데 저렇게 조금 다치다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앞으로 사니와의 점괘가 좋게 나오면 절대 사니와를 현세로 내보내지 말아야겠다. 연고를 다 발랐다는 듯이 시시오는 손을 탁탁 털고 일어났다.

 

“연고 발라줘서 고마워 시시오.”

“뭘 이런 걸 가지고 헤헤. 앞으로는 다치고 오지 말라고!”

“시시오는 상냥하네. 헤헤. 앞으로는 조심할게.”

 

시시오의 가슴에 분홍빛 화살 하나가 박힌게 보인다. 사니와의 상냥하다는 칭찬 한마디에 시시오의 얼굴이 붉어지고 주위에 꽃잎이 흩날리는 것만 같다. 도검 남사라기보다는 사랑에 빠진 소년 같은 풋풋한 모습에 제 3자인 이치고 히토후리마저 미소를 짓는다. 낮잠을 잘 생각인지 사니와가 시시오의 손을 잡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요새 자주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이제 목표지점까지 얼마 안남은 것만 같다. 잘 됐다며 시시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이치고 히토후리 뒤로 미카즈키 무네치카가 콘노스케와 입씨름을 하고 있다.

 

“콘노스케도 정말 야속하구나. 어떻게 목숨 걸고 역사 수정자의 무리와 싸우는 내게 이럴 수가 있느냐?”

“미카즈키님! 제가 누차 말씀드렸지만 그 바둑판은 한두푼 하는 싸구려가 아니라 정말 비싼 물건이란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굳이 축낸다는 말을 써서 이 할배의 가슴을 찢어놔야만 했느냐?”

“그 말은 제가 실언이라고 수차례 사죄하지 않았습니까!”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는 미카즈키의 생떼에 콘노스케는 두통마저 느꼈다. 자신을 보자마자 이걸 사는 게 어떻냐며 미카즈키가 내민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콘노스케는 실신할 뻔 했다. 안 그래도 사니와가 현세에서 다쳐와서 심란해 죽겠는데 이런 비싼 걸 사서 뭐하냐고 해봤지만 미카즈키는 계속 사겠다며 자신을 졸라대기 시작했다. 결국 열이 뻗친 콘노스케가 이런 걸로 사니와님의 지갑을 축내지 말라고 빽 소리지르자 마자 그걸 꼬리잡아서 자꾸 떼를 쓴다.

 

“..그러면 사니와님께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것도 좋지만 난 지금 당장 사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 앞으로 어떻게 되도 모르는 일입니다.”

 

콘노스케의 말이 들리자마자 아까까지 하던 슬픈 연기를 집어치우고 바로 화사하게 미소를 띄우는 미카즈키를 보고 콘노스케는 혈압마저 오를 지경이였다. 할부 같은 용어는 모른다며 알아서 하라는 미카즈키의 말에 콘노스케는 사니와의 지갑을 위해 조용히 12개월 할부라고 적힌 곳에 체크를 하였다. 주문서를 다 작성한 콘노스케는 미카즈키에게 내일 쯤 오니 기다리라고 한 다음 주문서를 물고 부디 불똥이 튀지 않길 바라며 현세로 도망가버렸다. 당분간 이 혼마루에는 오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과 함께.

 

콘노스케와의 소란을 들었는지 방문을 열고 졸린 눈을 비비면서 시시오와 함께 사니와가 나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사니와 앞에 미카즈키는 싱긋 웃으며 아까 봐둔 바둑판 사진을 내밀었다.

 

“아가. 이걸 보렴. 참 멋지지 않니?”

“오. 정말 멋지네. 하지만 너무 비싼걸..”

“비싼거였느냐? 난 잘 모르겠구나.”

“하하하. 설마 산건 아니지?”

“아가. 그게 말이다..”

“...설마 샀어..?”

 

사니와는 어느새 생기가 다 죽은 초점 없는 눈을 한 채 미카즈키에게 비틀비틀 다가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제발 안 샀다고 말해줘.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줘. 사니와의 처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오늘 운세는 사니와의 편이 아니였다.

 

“미안하단다. 아가야. 이해해주렴.”

“영감! 하다못해 허락이라도 받고 샀어야지!”

“난 가게에 대한건 잘 모르는 걸 어떻하느냐..아가야?”

“주인?”

 

죽은 동태눈을 한 채 멍하니 서있는 사니와에게서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어이 주인. 정신차려. 시시오가 등을 툭 치니 선채로 기절해 있던 사니와가 나무토막처럼 친 방향으로 풀썩 쓰러진다. 다급히 그를 안아 올린 시시오의 눈에 사니와의 손에 꼭 쥐어진 무언가가 보인다. 꾹 쥐어진 손을 억지로 펴서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대길’이라고 쓰여진 나무토막이 보인다. 이것 때문에 악운이 겹치는 것이다. 시시오는 나무토막을 빼앗아 연못 안으로 던져버리고 방 안으로 사니와를 데려갔다. 오늘 밖은 사니와에게 위험하다. 절대 내보내지 않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