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오리지널 사니와 언급됩니다.
검x사니 주의
도검난무 팬픽
캐해석 붕괴 주의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붉은 탁상 안에 수많은 남자들이 앉아있었다. 조용히 울려퍼지는 격조높은 클래식음악과는 달리 어두운 테이블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칩이 여기저기 오가고 있었고, 흐트러진 카드들을 한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사람 대부분은 찌푸린 표정으로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침울하고 낮은 분위기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칩을 챙기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어이구~ 이거 죄송합니다아~ 나만 너무 따가는것 같네요?"
"카드 조작 아니야? 어떻게 내리 4판을 이겨?"
자신을 향해 얼굴을 붉히며 삿대짓을 하는 남자를 향해 나오키는 낄낄 웃으면서 자신은 결백하다는 듯이 소매를 털털 털어보였고, 남자는 속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앉자마자 중앙에 있는 남자가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카드를 하나씩 돌리기 시작하였다. 나오키는 카드가 5장이 되자마자 왼쪽 손으로 살짝 열어 보았고, 결과를 보자마자 심장이 멎어 버릴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다.
붉은색 하트의 A, K, Q, J, 10. 포커에서 가장 강한 통칭 로얄 플러쉬였다. 다른 놈들이 무슨 패가 나오던간 자신을 이길패는 없다. 그는 카드를 살포시 덮어놓고선 주머니에서 이시키리마루가 만들어준 부적을 꺼내서 살짝 입을 맞추어 보였다. 솔직히 반신반의 했지만 이렇게 운이 좋을줄이야! 앞으로는 자주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고서 주머니에 부적을 다시 집어 넣어서는 판돈을 올리지 않고 턴을 넘겼다. 그 모습을 본 남자들은 한번 당해보라는 식으로 너나할것 없이 판돈을 무지막지하게 올리기 시작했고, 나오키는 자신이 쳐놓은 함정에 보기좋게 걸려든 남자들을 향해 조용히 비웃으면서 굵은 담배를 물고 뻐끔뻐끔 피워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차례가 돌아오자 남자들은 빨리 하라는 듯이 찌푸린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닥달을 하기 시작했다.
"이봐 젊은이. 빨리 판돈 걸지 그러나."
"물론 전 콜이죠. 그런데 아저씨들 괜찮으시려나? 나 이번에는 진짜 센데?"
"허허허. 웃기지 마. 이번은 안속아."
남자들은 웃어보이고선 차례차례 카드를 뒤집어서 자신의 패를 공개하기 시작했고, 나오키의 미소는 점점 진해졌다. 죄다 자신보다 약한 패인데 뭘 믿고 배팅했는지 모르겠다. 뭐 상관없지 내돈 잃는것도 아닌데. 어느새 테이블에 뒤집혀 있는 나오키의 패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남자들은 빨리 뒤집어 보라고 닥달했지만, 나오키는 남자들을 더 놀릴 속셈인지 그저 갈색의 담배만 뻐끔뻐끔 피고 있었다.
"이봐! 빨리빨리 뒤집어! 이제 자네 차례라고!"
"좀 기다려 봐요. 담배 피고 있는거 안보이십니까?"
"아 그러면 피면서 뒤집으면 되잖아!"
"한쪽손이 망가졌는데 어떻게 동시에 합니까? 안그래도 한손으로 치느라 바빠 죽겠구만."
"헤에 그러면 내가 대신 뒤집어줄까?"
"오! 그래주면 고맙..?"
나오키는 말을 끊고선 석고상처럼 꽁꽁 굳어버렸고, 동시에 담배를 집어든 손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목소리는. 왜 이목소리가 여기서 들려? 나오키는 고개를 살짝 돌려 자신의 어깨위에 올려져 있는 붉은 메니큐어가 칠해진 손을 바라보았고, 동시에 속에서 천둥이 치는것 같은 느낌과 함께 심장 박동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 녀석이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나없이 혼자 뛰쳐나올수는 있는건가? 아 그래! 이건 환각이다. 텐션이 너무 올라가서 내가 환상을 보고 있는것이 틀림없어.
"아저씨들. 혹시나. 아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제 뒤에 누군가 있나요?"
"응.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한 사람이 있는데. 그건 왜?"
음..집단 환각이구나. 아무래도 이 담배연기에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게 틀림없어. 나오키는 애꿎은 담배를 탓하면서 점점 자신만의 망상속으로 빠져 들어갔고 어깨위에 올려진 손은 나오키가 망상속에서 허우적대는 꼴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테이블에 손을 뻗어서 카드를 뒤집어주었고, 테이블은 남자들의 숨들이키는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결국 나오키는 고장난 태엽처럼 삐그덕거리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고, 그곳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내려다 보는 카슈 키요미츠가 있었다.
"아...안녕! 카슈! 산책하기 딱 좋은 밤이구나. 그치?"
"그렇네! 하지만 산책치고는 너무 멀리온것 같은데?"
다행이다! 그나마 말이 어느정도 통할것 같은 카슈가 와서! 만약 이치고나 카센이 왔었더라면 난 아마 지금쯤 뼈도 못추렸겠지. 나오키는 주머니속에 있는 행운부적을 써준 이시키리마루에게 속으로 조용히 감사의 인사를 하고 카슈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카슈는 그에게 미소로 화답하고선 속으로 안도하는 나오키를 질질 끌고선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인상을 쓴 카슈의 입에서 설교가 시작되었다.
"종이 한장 남기고서 도망치다니! 우리가 얼마나 걱정한지 알기나 해?!"
"도..도망치다니! 엄연한 외출이야!"
"외출은 무슨! 도박하려고 몰래 도망간거잖아?"
"아..아니야! 그..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이번 한번은 넘어가 줄게."
카슈의 말에 나오키는 순순히 실토하기 시작했다. 사실 너무나도 포커가 치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나온거야.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밖이였어. 다행히 카슈는 어느정도 기분이 풀린것인지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그리 화가 나보이진 않았다. 카슈는 볼멘 목소리로 이번 한번만 넘어가 주는거라고 말한 다음, 나오키와 팔짱을 끼고선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 말에 나오키는 기겁하였다. 돌아가? 설마 혼마루로? 아직 하루도 안지났는데? 나오키는 이대로 돌아가기는 싫다는 듯이 카슈에게 잡힌 왼팔을 빼내려고 애를 썼지만, 빼내려고 하면 할수록 카슈의 팔은 점점 억세게 조여오기 시작했다.
"카..카슈! 일단 팔부터 놓고 말하자!"
"안돼. 또 도망가려고? 얌전히 따라와."
카슈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팔에 더욱더 힘을 주었고, 결국 나오키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의 심정으로 카슈에게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혼마루로 가면 분노한 남사들에 의해서 최소 사망확정이다. 하다 못해 변호사라도 같이 데려갔으면 여한이 없겠건만..그렇게 속으로 한탄하면서 조용한 밤거리를 걷던 도중, 뜻밖에도 익숙한 얼굴들을 보게 되었다. 나키기츠네와 그의 주군인 뒤로 묶은 연갈색 머리에 선해보이는 얼굴, 얼마전에 사니와 회의에서 본 사람이였다. 분명 아키라고 부르라고 했지. 아마?
"안녕하세요 아키씨! 이런곳에서 뵙게 될줄은 몰랐네요."
"하하. 안녕하세요 나오키씨."
"...안녕."
왜 이런 늦은시간에 여기 계시냐는 나오키의 질문에 아키는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왔는데 너무 시간이 늦어버려서 숙소를 찾고 있다고 답하였고, 답변을 들은 나오키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선 주머니속을 뒤적이더니 자그만한 열쇠를 꺼내서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무리 숙소를 찾는다지만 밤 늦게 이런 으슥한 곳에 다니면 불량배의 타겟이 되기 딱 좋다.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카지노 딸린 호텔이 하나 나오는데 거기 열쇠에요. 숙박비 하루어치는 결제해놨으니 그냥 묵으시면 되요."
"앗! 정말 감사합니다!"
"늦은시간에 이런 으슥한 곳으로 함부로 다니시면 나쁜사람 만나요!"
"맞아 맞아. 우리 주인같은 사람만나니까 조심해야해."
뭠마? 나오키는 자기 말에 칼같이 태클을 거는 카슈를 째려보았지만, 카슈는 그런 시선따윈 가볍게 무시하고서 그의 만행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아무말 안하고 도박하러 가고 남의 무덤 다 털어가는 나쁜 사람 만날수도 있으니 조심해."
"야! 누가 무덤을 털어가!"
"나 그때 다 봤거든?"
중간에 끼여든 나오키는 모르겠지만 사실 과거의 환영이 보여준건 그의 아픈 과거뿐만이 아니였다. 과거에 저질렀던 그의 추태또한 남사들에게 전부 보여줬던 것이다. 예로 들면 그는 주워온 것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사실은 남의 관짝을 폭탄으로 박살낸다음 주워왔던 팔찌라던가, 혹은 그가 몰라서 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폈던 아편이라던가. 그 환영들을 보고 얼마나 많은 남사들이 한숨을 푹푹 쉬었는지 그는 알까?
"카슈! 내가 누누히 말했잖아! 도굴이 아니라 무너진 곳에서 주워온 거라고!"
"무너뜨린 장본인이 그런말 하면 안돼지!"
카슈의 폭로를 들은 맞은편의 아키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만 가고, 나키기츠네의 눈에는 어느새 경계심까지 서려있다. 반쯤 범죄자 이미지가 찍혀버린 나오키는 그를 향해 손을 내저으면서 필사의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저기 그러니까! 그래 생계형! 생계형 범죄였어요!"
"그래도 도굴은 나쁜거 아시죠?"
"네! 물론 알죠! 이제는 사고 안쳐요! 정말이에요!"
"안치긴 무슨. 도박하러 도망쳤다가 잡혀오는 중이잖아."
"카슈! 너 진짜!"
카슈는 폭로를 다하자마자 잊지 않았다는 듯이 다시 팔짱을 껴서 나오키가 도망치지 못하게 막았고, 그 모습을 본 아키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잘 있으라는 듯이 한번 손을 흔들어 보이고선 나키기츠네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카슈 또한 나오키를 잡아 끌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하늘이 점점 밝아져 오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의 눈앞에는 자신의 혼마루로 향하는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평범하게 보이던 입구가 오늘따라 지옥의 입구처럼 느껴진다. 수용소에 도착한 무기징역수의 심정이 아마 이러할 것이다. 어느새 카슈는 그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자 자. 이제 돌아가자."
"카슈. 너 짱귀여워. 최고로 귀여워."
"헤헤..정말..? 고마워 주인."
"그러니까 이 손을 놓아주면 안될까...? 나 들어가면 진짜 죽어."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래? 자 돌아가자!"
잠깐 마음의 준비를 할새도 없이 카슈는 그대로 그를 끌고 입구로 들어가 버렸고, 곧 이어 몸안에서 영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더니 혼마루의 입구가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보인것은 그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했던 자들 중 하나였다.
"다녀오셨습니까 주군?"
이치고 히토후리가 마중나와 있었다. 평상시처럼 화려한 미소를 띈 표정이였지만 눈 밑에 희미하게 드리워진 다크서클이 밤새도록 자신들을 기다렸다는것을 알려주었다. 또한 미간이 살짝살짝 꿈틀대고 있는것이 폭발 직전의 폭약뭉치를 보는것 같았다. 지금의 이치고는 매우매우 위험하다. 혀를 잘못놀렸다가는 그대로 황도천행 편도 티켓을 끊게 되리라. 카슈는 이치고를 보자마자 팔짱을 풀고서는 쉬러 간다고 숙소로 가 버렸고, 어느새 입구에는 나오키와 이치고 둘 밖에 없었다. 이치고는 공포에 굳어있는 나오키의 손을 조용히 잡고선 혼마루쪽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나오키의 머리속에는 경고등이 빤짝이기 시작했다.
"주군. 산책은 즐거우셨는지요?"
"이..이치고..? 하..할 말이 있는데 말이야.."
"부디 즐거웠으리라 믿습니다."
아니야. 안즐거웠어. 정확히 말하면 즐겁다가 말았어 제발 살려줘. 어느새 이치고는 본채에 있는 나오키의 처소로 그를 데리고 가서는 이부자리에 그를 눕히고선 다시는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문쪽에 이불을 피고 누워서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아주 만약. 아주 만약이지만 다시 탈출할 생각은 말아주세요."